2026-06-09

쉬안청 징현에서 생산된 선지는 가볍고 얇고 부드러우면서도 질긴 것이 특징이며, 그 빛깔은 마치 눈처럼 희고 영롱하다.
아름다운 시문이 천년의 세월을 넘어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데는 두 가지 문방의 보물이 있었다. 바로 종이와 먹이다. 예로부터 쉬안청은 제지(製紙)와 제묵(製墨)의 중심지였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선지(宣紙)는 ‘지수천년(紙壽千年, 천 년을 견디는 종이)’라 불릴 만큼 먹을 잘 머금고, 휘묵은 ‘먹 한 점이 옻과 같아 만 년이 지나도 본색을 잃지 않는다’라고 해 중국 서화 예술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재료로 꼽힌다.

징현의 한 선지 생산 작업장에서 두 명의 장인이 전통 방식으로 초지 작업을 하고 있다.
‘천년을 견디는 종이’의 비밀
이른 아침 산안개가 채 걷히기도 전, 징현 랑차오(榔橋)진의 한 초지(抄紙) 작업장에는 대나무 발이 물을 가르는 리듬감 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국공장(大國工匠, 국가 명장)’ 칭호를 받은 저우둥훙(周東紅) 제지 장인은 거의 40년째 이 소리를 들어왔다.
그는 허리 높이의 지조(紙槽) 옆에 서서 맞은편 동료와 호흡을 맞추며 발 틀을 종이 풀 속에 담그는 작업에 한창이다. 담그고, 들어 올리고, 다시 담그고, 다시 들어 올린다. 20초도 되지 않아 매미 날개처럼 얇고 축축한 선지의 형체가 발 위에 나타났다. 저우 씨는 자신이 떠낸 선지 한 도(刀, 100장)의 무게 오차가 50g을 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지는 150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전통 기예의 산물이다. 징현에서만 자라는 청단목(靑檀木) 껍질과 사전(沙田, 모래땅) 볏짚을 원료로 해 100단계가 넘는 공정과 300일 이상의 시간을 거쳐야 비로소 종이 풀로 탄생한다. 저우 씨가 날마다 몸을 숙여가며 반복하는 초지 작업은 종이의 두께와 균일도를 결정짓는 핵심 단계로, 오롯이 손끝 감각으로 각도와 힘을 조절해야만 한 장 한 장 고른 두께를 얻을 수 있다.
저우 장인은 처음에는 생계를 위해 이 일을 시작했지만, 30여 년이 흐른 지금은 이 일이 자기 삶의 일부가 되었다고 털어놨다.

징현 한 선지 생산 작업장에서 장인이 형체를 갖추기 시작한 선지를 대나무 발에서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전통 선지 공예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징현에는 선지 문화 테마 관광단지가 조성됐다. 관광객은 한 장의 종이가 탄생하는 전 과정을 눈으로 보면서 직접 종이를 뜨고 말리는 체험도 할 수 있다.
단지 내 ‘삼장삼(三丈三)’이라는 초대형 선지 작업실에는 44명의 장인이 일사불란하게 호흡을 맞춰 길이 11m, 너비 3.3m에 달하는 초대형 선지를 제작한다. 2016년 기네스 세계 기록에 ‘세계 최대의 수작업 선지’로 등재된 이 작업은 제작 난도가 무척이나 높다. 경험이 풍부한 초지 장인들이 수백 차례 완벽한 배합을 이뤄야만 비로소 완성할 수 있다.
초지 작업이 완료된 습지(濕紙)는 압착을 거쳐 40도가 넘는 고온의 건조실로 옮겨진다. 작업자는 솔잎 브러시로 습지를 쓸어 뜨거운 건조 판에 밀착해 말린다. 이렇게 완성된 선지는 ‘매미 날개처럼 가볍고 눈처럼 희며, 흔들어도 고운 비단처럼 소리가 나지 않는다’라고 표현한다. 이 선지는 먹이 풍부하게 퍼지면서도 질기고 윤이 나며, 윤택이 있지만 미끄럽지 않아 천 년 이상 보존이 가능하다.
오늘날 징현의 장인들은 전통 백색 선지 외에도 옛 기법을 바탕으로 광물이나 식물성 염료를 활용해 다색(茶色, 황갈색), 자청(瓷靑), 추향(秋香, 황록색) 등 수백 가지의 ‘컬러 선지’를 제작해 예술 창작의 폭을 넓히고 있다.

징현의 한 선지 생산 작업장에서 장인이 습지를 고온 건조판에 붙여 말리고 있다.
만 년 동안 변치 않는 묵빛
‘천 년의 약속’을 담아낸 선지 곁에는 그 오랜 세월을 함께 버텨온 먹이 있다.
쉬안청 지시(績溪)현 상좡(上莊)진의 한 공방에서 탕탕대는 망치질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공기 중에는 소나무 그을음 특유의 향과 소가죽 아교의 비릿함, 은은한 약초 내음이 뒤섞여 있다. 일흔이 넘은 후자밍(胡嘉明) 휘묵 기예 전승자는 이곳에서 쇠망치를 들고 계속해서 먹 반죽을 두드리고 있었다.

쉬안청 지시현의 한 먹 공방에서 장인이 금가루를 묻힌 붓으로 말려둔 휘묵에 정성껏 금박을 입히고 있다.
그는 아교와 그을음을 충분히 섞으려면 재료를 수없이 두드리고 반죽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좋은 먹 한 덩이는 ‘천 번을 두드리고 만 번을 주무르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고약(膏藥)처럼 부드러워진다. 이 ‘망치질’ 공정은 휘묵 제작에서 가장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 단계이기도 하다.
휘묵의 가치는 이 ‘그을음’에서 시작된다. 후 장인은 “최고급 휘묵은 오동나무 기름 그을음으로 만든 동유연묵(桐油煙墨)으로, 오동나무 기름에 옻과 돼지기름을 태워 그을음을 만든 다음 이를 모아 중약재와 섞어 만드는 방식”이라고 소개했다. 송연묵(松煙墨)도 마찬가지로 땅속에 묻힌 소나무 뿌리를 태워 채연 작업을 거친 뒤 다른 재료를 배합해 만든다. 이렇게 모은 송연이나 동유연은 소가죽 아교와 진주, 금박, 사향, 빙편 등 십여 가지 귀한 재료를 넣어 전통 비법에 따라 정성스레 섞는다. 약재를 첨가하면 색과 향을 더할 뿐 아니라 방부와 방충 효과도 있어 먹색이 오래도록 선명하게 유지된다.

쉬안청 지시현의 한 먹 공방에서 장인이 틀에서 빼낸 먹의 가장자리를 다듬고 미세하게 거친 조각들을 긁어내고 있다.
형태를 갖춘 먹 반죽은 용과 봉황, 산수나 시문이 새겨진 석남목(石楠木) 틀에 넣어 압착한 뒤,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간 걸쳐 그늘에서 자연 건조한다. 마지막으로 장인이 금가루로 문양 하나하나를 정교하게 그려 넣으면 완성된다. 정성을 다해 제작된 휘묵은 ‘집으면 가볍고 갈면 맑으며, 향기가 그윽하고 단단하기가 옥과 같으며, 소리 없이 갈리고 먹 한 점이 옻과 같아 만 년이 지나도 본연의 빛을 잃지 않는다’라며 찬사받는다. 중국의 고대 서화가 수천 년이 지나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데에는 휘묵의 공이 크다. ‘먹 한 냥이 황금 한 냥’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귀중한 휘묵은 단순한 필기구를 넘어 서화와 조각, 조형미가 집약된 독창적인 예술품이 됐다.
종이와 먹, 하나는 희고 하나는 검고, 하나는 부드럽고 하나는 단단하다. 서로 결이 다른 둘이 어우러져 이 땅의 천 년을 이어온 시와 글의 전통을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머금고 있다.
2008년 베이징(北京) 올림픽 개막식 공식 주제가를 불러 중국인에게도 친숙한 세계적인 뮤지컬 배우 사라 브라이트만(Sarah Bright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