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7
금요일 퇴근길, 망설임 없이 공항으로 향한다. 두 시간의 비행 뒤 눈앞에 펼쳐진 한국 서울의 밤. 토요일에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콘서트를 관람하고, 홍대 거리에 나지막이 울려 퍼지는 버스킹에 귀를 기울이다가 성수동으로 발걸음을 옮겨 힙한 브랜드 매장을 구석구석 누빈다. 일요일 저녁, 소중한 추억과 사진을 가득 품은 채 귀국길에 올라 월요일 아침이면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한다. 이는 최근 일부 중국 젊은 세대 사이에서 정착된 주말 풍경이다.
바다 건너 이웃 나라 한국에서도 이와 닮은 역방향의 여정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의 미식과 쇼트폼 콘텐츠, 고장극(古裝劇) 등을 통해 중국의 새로운 모습을 접한 한국 젊은 층이 중국 방방곡곡으로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
서로를 향해 움직이는 이 흐름의 배경에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동력이 있다. 바로 ‘대중문화’가 양국 젊은 층이 서로에게 다가가는 데 가장 매혹적인 명분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2026년 2월 12일, 상하이 예원에서 한국인 여성 관광객 두 명이 중국 전통의상을 입고 셀카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VCG
중국 젊은 세대는 왜 한국 문화에 매료됐나?
“중학교 때부터 한국 대중문화를 좋아했다. 평소 케이팝(K-pop) 음악을 즐겨 듣다 보니 대학 전공도 자연스레 한국어를 선택했다.” 선전(深圳)의 직장인 류페이린(劉沛林)은 옛 기억을 떠올렸다. 성인이 되어 한국 땅을 밟았을 때, 그는 해외여행이라는 낯선 느낌보다 마치 오랜 고향에 돌아온 듯한 묘한 친숙함에 놀랐다고 한다.
2024년 겨울, 대학원생이던 그는 한국 걸 그룹 잇지 콘서트를 보기 위해 서울을 다시 찾았다. 그의 인생 첫 콘서트였다. “정말 엄청난 전율이 일었다. 한국 아티스트의 압도적인 기량은 물론 사운드와 무대 연출도 훌륭했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것은 현장 분위기였다. 케이팝 팬들이 한데 모여 공연을 만끽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온몸으로 빠져드는 즐거움 때문일까? 류 씨는 서울 여행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채 반년이 지나지 않아 그는 걸 그룹 블랙핑크 콘서트를 보기 위해 다시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두 차례 모두 일주일 일정이었다. 콘서트 당일에는 공연장과 주변 매장을 둘러 보고, 나머지 시간에는 명동과 이태원, N서울타워와 성수동 등을 구경 다니며, 치킨과 바비큐도 맛있게 먹었다.
덕질에서 시작된 여정은 그에게 단순한 여행 이상의 가치를 선물했다. 콘서트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한국인 친구와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공동 관심사로 맺어진 인연 속에서 한국은 이제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언제든 마음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친근한 아지트’로 자리 잡았다.
중국에서는 류 씨와 같은 청년이 적지 않다. 한국 대중문화의 영향을 받은 그들은 화면 너머의 서울 거리 곳곳이 이미 친근하다. 이들에게 한국 여행이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온 공간을 찾아 떠나는 것에 가깝다.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는 여성은 <도깨비>의 촬영지가 있는 강원도 주문진 해변으로 달려간다. 남녀 주인공처럼 빨간 목도리를 두르거나 우산을 들고 극 중 로맨틱한 명장면을 재현해 본다. 예능 팬은 홍대 골목으로 향한다.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등장한 스타들이 다녀간 맛집과 카페를 찾아다닌다. ‘한국 여성 문학’ 마니아는 독립 서점을 방문해 인증샷을 찍는다. 트렌드에 한발 앞선 패피들은 한남동과 성수동 거리를 누비며 한국 패션 브랜드 매장을 둘러보거나 스타의 메이크업 스튜디오를 찾아가 케이팝 아이돌과 비슷한 스타일링을 체험한다. 소셜 미디어(SNS) 발달에 힘입어 한국 대중문화가 거의 실시간으로 중국에 퍼지고 있다. 패션 스타일에서 사진 촬영 포즈까지, 카페 문화에서 라이프 스타일까지, 한국 대중문화는 생생하게, 그리고 일상 속으로 스며들며 중국 젊은 세대를 잇달아 사로잡고 있다. 그렇게 이들에게 몇 번이고 한국으로 다시 떠날 이유를 안겨준다.
한국 MZ가 중국에 ‘입덕’한 또 다른 이유
10년 전만 해도 한국인에게 중국에 왜 가느냐고 물으면 부모님을 모시고 장자제(張家界, 장가계)를 여행하거나, 산둥(山東)성의 태산(泰山)에 오르고, 베이징(北京)에서 장성(長城)을 보기 위해서라는 답이 많았다. 하지만 오늘날 같은 질문을 던지면, 한국 청년들의 입에서는 다양한 대답이 쏟아져 나온다. 상하이(上海)예원(豫園)에서 고풍스러운 한푸(漢服)를 입어보거나, 충칭(重慶)의 멋진 도시 야경을 배경으로 오토바이 콘셉트 스냅 사진을 남기고, 청두(成都)에서 정통 훠궈(火鍋)의 얼얼한 맛을 즐기고 싶어 떠난다는 식이다.
이렇듯 새롭게 등장한 여행의 명분들 가운데, 단연 첫걸음을 떼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매력은 바로 ‘중국 미식’이다. 최근 들어 마라탕(麻辣燙), 마라샹궈(麻辣香鍋), 훠궈, 밀크티(奶茶) 같은 중국 미식이 한국인의 일상 깊숙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하이디라오(海底撈)와 차지(霸王茶姬, CHAGEE) 등 식음료 브랜드가 한국 곳곳에 들어섰고, 식사 시간이면 매장 앞마다 긴 대기 줄이 늘어선다. “요즘 한국에서는 초등학생이면 탕후루를 먹어봤고, 중학생이면 마라탕을, 고등학생이면 마라샹궈를, 대학생이면 하이디라오를 먹어봤다.” 김현철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재치 있는 한마디는, 중국 음식이 현재 한국에서 얼마나 유행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중국의 무비자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국내에서 맛본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한국 MZ세대가 늘고 있다. 오로지 현지의 훠궈나 바비큐를 맛보겠다는 목적 하나만으로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심지어 열정적인 한국 누리꾼들은 도시마다 꼭 맛봐야 할 음식을 표시한 ‘중국 미식 지도’를 소셜미디어에 공유하기도 했다.
중국 미식이 일찍이 입소문을 타며 입지를 다졌다면, 중국 고장극과 전통 스타일링 같은 대중문화는 한국 청년들에게 중국 여행의 열망을 지피는 또 다른 불씨가 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절요(折腰)>, <장해전(藏海传)>, <성하체통(成何体统)> 등 중국 고장극이 한국 마니아층에서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올해 <축옥(逐玉): 옥을 찾아서>가 유료 OTT 플랫폼 넷플릭스에 공개된 뒤 한국 글로벌 비영어권 드라마 주간차트 2위에 올라 한국에서 서비스된 중국어 드라마 가운데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이를 계기로 중국 고장극을 향한 관심은 더 넓은 시청자층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주요 촬영지인 헝뎬(橫店) 월드 스튜디오와 쑤저우(蘇州)의 원림(園林) 등이 한국 관광객의 새로운 방문 코스로 떠올랐다.
한국 시청자들의 관심을 끈 건 드라마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등장하는 인물의 의상과 헤어 스타일, 메이크업도 화제의 중심에 섰다. 적잖은 한국 스타와 뷰티 크리에이터들이 앞다퉈 중국풍 스타일링에 도전했다. 원산미(遠山眉, 가는 눈썹)부터 화전(花鈿, 이마에 붙이는 꽃 장식)까지, 그리고 전통 머리 모양에서 의상까지 이른바 ‘중국 왕훙(網紅) 메이크업’이 한국 소셜미디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런 흐름을 타고 ‘중국 전통 의상 화보 찍기’를 여행 버킷 리스트에 올리는 한국인도 점점 늘고 있다. 이제 베이징 고궁(故宮, 자금성)이나 상하이 예원 근처에 즐비한 전통 메이크업·의상 가게에서 한국 여성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마라탕 한 그릇에서 고장극 한 편으로, 다시 중국 전통 의상과 스타일링까지. 중국 대중문화가 ‘몸소 즐기는 경험’을 앞세워 한국 MZ세대가 가진 중국의 이미지를 새롭게 그려내고 있다. 이제 그들이 중국 여행길에 오르는 이유도 단순히 ‘보러 가는 것’에서 ‘체험하러 가는 것’으로 바뀌었다.
대중문화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연결고리
과거엔 낯선 국경을 넘게 만들었던 원동력이 명승고적과 대자연을 눈에 담는 ‘세상을 보러 가는 일’이었다면, 오늘날의 동력은 그곳의 일상 깊숙이 들어가는 ‘그 세계에 빠져드는 일’에 가깝다. 드라마의 한 장면 속으로, 노래가 만들어내는 분위기 속으로,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속으로 말이다. 요컨대 대중문화가 청년들에게 ‘길을 떠날 명분’을 쥐여주고 있으며, 그것은 새로운 만남을 선사한다. 이제 청년들은 ‘낯선 나라에 간다’라는 불안감이 아니라, ‘이미 익숙한 세계를 만나러 간다’라는 설렘을 안고 출발한다.
위완잉(于婉瑩) 산둥대학 한국연구센터 부주임은 바로 이것이 현재 중한 민간교류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중국 90허우(後, 1990년대 출생자)와 00허우(2000년대 출생자)는 한국의 예능과 케이팝이 낯설지 않고, 한국 젊은 층도 틱톡(TikTok)과 마라탕 등에 익숙해졌다. 디지털 환경에 능통한 이 활기찬 세대는 누군가의 소개가 필요하지 않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체험하는 데 훨씬 익숙하다. 이러한 패기와 시행착오에 대한 낮은 부담감 덕분에 서로를 이해하는 문턱이 한층 낮아졌다.”
위 부주임은 이어 현재 중한 양국 국민이 왕래를 통해 축적한 일상적인 소통이 과거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허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것이 바로 중한 민간교류가 지속적으로 속도를 내며 흔들림 없이 멀리 나아갈 수 있는 핵심이다. 왕래하는 발걸음은 서로 문화를 배우며 차곡차곡 쌓이고, 그 문화적 교감은 마침내 마음과 마음을 잇는 깊은 친밀함으로 녹아들고 있으니 말이다.”
대중문화라는 거대하고 매혹적인 파도를 탄 이 인적 교류의 물결은 이제 막 첫발을 뗐을 뿐이다. 점점 더 많은 이들이 국경을 넘고 있다. 낯선 풍경을 눈에 담기 위해서가 아니라, 화면을 통해 오랫동안 매료돼 온 그 세계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기 위해서다. 어쩌면 양국 민간교류가 써 내려갈 새로운 이야기, 그 첫 페이지가 바로 지금 펼쳐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 | 왕윈웨(王雲月)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