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9
징마이산의 고차림과 고촌락을 뒤로하고 푸얼의 대지로 들어서면 여러 소수민족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생생한 풍경이 펼쳐진다. 푸얼시는 전체 인구의 61%가 소수민족으로, 13개 소수민족이 오랜 세월 이곳에서 삶의 터전을 일궈왔다. 그중에서도 와(佤)족, 라후족, 하니(哈尼)족은 산에 의지하고 물을 벗 삼아 살며 소박하고 따뜻한 삶의 온기를 이어오고 있다.

라오다바오(老達保) 마을은 전형적인 라후족 산간 마을이다. 사진은 2018년 9월 20일 마을 주민들이 전통 악기 호로생을 연주하며 공연을 펼치고 있는 모습이다.
징마이산에서 서쪽으로 더 이동하면 시멍(西盟) 와족 자치현에 닿는다. 이곳에는 와족의 정신적 성지인 룽모예(龍摩爺)가 있다. 자치현 남쪽 원시림에 둘러싸인 열대우림 호수, 멍숴룽탄(勐梭龍潭)이 있으며 롱모예는 그 깊은 곳에 자리한다. 와족 언어로 ‘신령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뜻이다. 절벽 위 고목 사이로는 3000여 구의 물소 머리뼈가 듬성듬성 걸려 있다. 세월의 풍화를 견디며 희뿌옇게 바래고 이끼가 내려앉은 머리뼈들이 밀림 속에 묵묵히 서 있는 정경은 신비롭고도 압도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현지 와족 청년 옌쿤(巖昆)은 과거 와족 사람들이 물소 머리를 제물로 바치며 풍년과 가정의 평안을 빌었다고 설명했다. 와족에게 물소 머리는 부와 경건함의 상징이자, 만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신앙에 기댄 의탁의 대상이다. 매년 전통 명절인 무구절(木鼓節)이 되면 와족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향을 피우고 술을 뿌리며 경을 읊고, 숲의 풍요로움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한다.
시멍현에서 징마이산이 있는 란창현으로 돌아오면 라후족 마을이 나타난다. 산비탈을 따라 조성된 마을에는 초가집과 죽루(竹樓, 대나무 다락집)가 옹기종기 이어진다. 길가에는 주민들이 햇볕에 말리고 있는 황금빛 옥수수와 묵은 찻잎이 정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조롱박은 라후족의 정신적 토템이다. 라후족의 조상이 박에서 태어났다는 전설 때문에 라후족 사람들은 옷에 조롱박 무늬를 수놓거나 처마 밑에 말린 조롱박을 매달고, 몸에 지니고 다니는 악기인 호로생(葫蘆笙)을 만들어 연주하기도 한다. 죽루 앞에 앉아 서툰 손길로 호로생을 눌러보며 구성진 가락을 반복해 연습하던 라후족 청년 자하이(扎海)는 웃으며 말했다. “라후족은 태생적으로 노래와 춤을 좋아합니다. 매년 호로절(葫蘆節)이 되면 온 마을 전체가 화려한 옷을 입고 모이는데, 남자는 호로생을 불며 춤을 리드하고 여자들은 손을 잡고 그 주위를 돌며 춤을 추죠. 모두가 술잔을 나누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아침부터 밤까지 흥겨운 춤판이 벌어진답니다. 호로생을 잘 불면 자신의 감정도 그만큼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요.”

2017년 4월, 윈난성 푸얼시 란창 라후족 자치현의 주징(酒井)향 라오다바오 마을에서 라후족 주민들이 흥겹게 춤을 추고 있다.
라후족 마을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면 모장(墨江) 하니족 자치현에 이른다. 산속에 자리한 하니족의 계단식 논에는 대대로 전해져 온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논은 산기슭에서 정상까지 산세를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다. 봄이면 물을 가득 머금은 논에 하늘과 산이 거울처럼 비쳐 반짝이고, 가을이 되면 벼가 익어 황금빛 물결이 온 산을 뒤덮으며 풍요로운 수확의 계절을 알린다.
하니족의 리(李) 할머니는 수확 철이 되면 커만(克曼)촌의 계단식 논밭 옆에서 오색 찹쌀밥을 지어 올린다. 이는 땅에 대한 감사와 경의를 표하는 하니족의 오랜 전통이다. 리 할머니는 동이 트자마자 산에 올라 밀몽화(密蒙花), 소목(苏木), 자람초(紫蓝草)를 따서 깨끗이 씻은 뒤 각각 솥에 담아 샘물을 붓고 약한 불로 천천히 달인다. 그렇게 노란색, 붉은색, 보라색, 파란색(자람초는 끓이는 시간에 따라 보라색과 파란색을 낼 수 있다)의 천연 즙을 만든다. 깨끗이 씻은 찹쌀은 둥글게 빚어 다섯 덩어리로 나눈다. 네 덩어리는 각 색상의 천연 즙에 반나절 이상 담가 풀과 나무의 향과 색이 충분히 배어들게 하고, 나머지 한 덩어리는 흰색 그대로 남긴다. 물들인 찹쌀을 나무 시루에 넣어 약불로 뭉근하게 쪄내면 오색이 선명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쫄깃쫄깃한 찹쌀밥이 완성된다. 리 할머니는 한 그릇을 건네며 미소를 지었다. “다섯 가지 색은 자연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에요. 이 땅에 감사하는 우리의 마음이 담겨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