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9
푸얼시는 예로부터 차마고도의 중요한 역참이자 푸얼차의 핵심 산지 가운데 하나다. 그중 푸얼시 남서부 란창(瀾滄) 라후(拉祜)족 자치현에는 이름 그대로 명불허전 ‘차의 산’이라 불리는 징마이산(景邁山)이 있다.
2023년 징마이산의 고차림 다섯 곳과 고촌락 아홉 곳이 ‘푸얼 징마이산 고차림 문화경관’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차(茶)를 테마로 한 세계문화유산으로는 세계 최초다. 온난·습윤한 기후의 징마이산에는 약 1200ha의 고차림이 있고, 100만 그루가 넘는 고차수(古茶樹)가 자라고 있다. 천 년이 넘는 차 재배 역사를 품은 징마이산은 하나의 ‘살아 있는 차나무 자연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6년 3월 26일, 윈난성 푸얼시 란창현 징마이산 징마이촌의 생엽 건조장에서 마을 주민들이 찻잎에 섞인 이물질을 골라내고 있다. (드론 사진)
소수민족을 살린 한 장의 찻잎
푸얼 시내에서 차를 몰아 서쪽으로 두 시간가량 달리면 징마이산으로 향하는 산길로 접어든다. 이곳 주민들과 차의 인연은 부랑(布朗)족의 선조 파아이렁(帕哀冷)으로부터 시작됐다. 10세기경 부랑족 선조들이 징마이산으로 이주한 뒤 역병이 퍼졌을 때, 몇몇 부족민이 우연히 야생 찻잎을 먹고 기적처럼 회복됐다. 이를 본 파아이렁은 부족민에게 야생 찻잎을 채취해 달여 마시게 했고, 마침내 마을의 역병을 잠재웠다. 이후 그는 사람들을 이끌고 정착해 야생 차나무를 재배했고, 숲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키 큰 교목 아래에서 차나무를 기르는 전통 재배법인 ‘임하차(林下茶)’를 창안했다. 부랑족 차 파수꾼들의 역사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오늘날 파아이렁은 ‘차의 시조’로 추앙받고 있다. 부랑족은 매년 4월 중순이면 산캉(山康) 차조절(茶祖節)을 연다. 이들은 차혼대(茶魂臺)에서 제사를 지내며 차나무 숲의 풍요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한다.
징마이산 푸얼차가 차마고도에서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데에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차 농가의 지혜가 숨어 있다. 따뜻하고 습한 기후에서 자란 윈난 교목형 대엽종 차나무는 부드러우면서도 통통한 찻잎을 길러내고, 이는 최고급 푸얼차를 만드는 핵심 원료가 된다. 여기에 차 농가들은 차나무 사이에 계화나무와 녹나무를 남겨 두거나 새로 심어 나무의 그윽한 향이 찻잎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했다. 그 결과 징마이산 푸얼차는 맑고 은은한 꽃향기를 품게 됐다. 과거 차마고도가 번성하던 시절, 노련한 차 상인들은 향기만 맡아도 징마이산에서 생산된 차임을 단번에 알아챘다고 한다.

징마이산 눠간 고촌락의 모습
차와 관광이 결합한 새로운 길
이른 아침, 징마이산에는 옅은 운무가 살포시 내려앉았다. 쪽빛 전통의상을 입은 부랑족의 차 농민 셴궁(仙貢)이 반가운 얼굴로 돌길을 따라 걸어와 관광객들을 오래된 차밭, 고차원(古茶園)으로 안내했다. 그는 능숙하게 차나무에 올라 방금 딴 어린잎을 건네며 환하게 웃었다. “입에 넣고 천천히 씹어보세요. 처음에 떫지만 곧이어 단맛이 올라옵니다. 그것이 바로 징마이산의 맛이랍니다.”
징마이산의 이름이 세상에 점점 알려지면서, 산골 주민들의 일상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지난해 7월, 셴궁 가족은 마을에 민박집을 열었다. 간란식(干欄式, 바닥을 지면보다 높게 지은 가옥) 목조 주택이 아기자기하게 어우러진 곳으로 창문을 열면 층층이 이어진 차밭이 한눈에 펼쳐진다. “전에는 차를 파는 것이 전부였지만, 이제는 이곳에서의 ‘하루 24시간’의 경험을 손님들에게 제공합니다. 새벽에는 산 중턱에 끝없이 바다처럼 펼쳐진 구름, 운해를 감상하고 낮에는 직접 찻잎을 따고 차를 만들죠. 해가 저물면 화당(火塘, 실내 바닥을 파서 만든 아궁이)에 차를 덖고, 밤이 되면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드는 멋진 경험이죠.”
산 위의 고촌락들은 저마다 색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부랑족 마을인 망훙(芒洪) 고촌락은 징마이산 정상에 위치해 붉게 타오르는 일출과 신비로운 운해를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은 명소다. 다이(傣)족 마을인 눠간(糯干) 고촌락은 94채의 가옥이 모두 문화재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고, 팔작지붕이 겹겹이 층을 이룬 정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마을에는 현지 주민들이 운영하는 카페와 잡화점이 들어서 있지만 원주민의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어 소란스럽지 않고 오히려 정겨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밤이 깊어지면 부랑족의 화당 주변에 시끌벅적하면서도 따스한 온기가 감돈다. 푸얼시급 제다 기술 전승자인 난캉(南康) 장인은 정통 방식인 ‘고차(烤茶, 구운 차)’로 손님을 대접한다. 조롱박을 이용해 은은한 불향을 입히고 찻잎을 덖은 뒤, 토기 주전자에 끓는 물을 부으면 치익 소리와 함께 차향이 사방으로 퍼진다. 난 장인은 이렇게 말한다. “차(茶)라는 글자를 풀어보면, 사람(人)이 풀(草)과 나무(木) 사이에 있는 모습이죠. 부랑족은 평생을 차와 함께 살아왔어요. 우리에게 찻잎은 단순한 경제 작물을 넘어 신앙 같은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