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1
음력 5월 5일, 중국의 단오절(端午節)은 춘절(春節, 중국 음력설), 청명절(淸明節), 중추절(中秋節)과 함께 4대 전통 명절로 손꼽힌다. 그리고 단양절(端陽節), 용주절(龍舟節), 여아절(女兒節) 등 다양한 이름으로도 불린다. 단오절의 중요한 풍습인 용선 경주는 2000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품고 있다. 명절이 다가오면 강변 곳곳에서 용선 경주가 펼쳐지고, 북소리와 사람들의 함성이 물결 위로 퍼져나간다.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전진하는 용선은 단결과 투혼의 정신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풍부한 문화적 함의도 담고 있다. 오늘날 용선 경주는 중국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돼 중화 민족을 대표하는 살아있는 문화로 이어지고 있다.

성어 출처와 기원
단오절 용선 경주의 기원은 여러 학설이 전해진다. 첫째, ‘토템 제사설’이다. 고대 오월(吳越)인은 용을 부족의 토템으로 삼았고, 단오절의 용선은 용 토템 제사 의식으로 풍년을 기원하고 질병과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둘째, ‘오자서(伍子胥) 기념설’이다. 오자서가 음력 5월 5일 전당강(錢塘江)에 몸을 던지자, 백성들이 배를 띄워 조류를 따라가며 그를 기렸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셋째, ‘조아(曹娥) 기념설’이다. 후한(後漢) 시대 조아가 음력 5월 5일 아버지를 찾아 강물에 투신했는데, 백성들이 배를 저어 수색에 나선 데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굴원(屈原) 투신설’이다. ‘용선경도(龍舟競渡)’라는 성어가 최초로 등장하는 진(晉)나라 주처(周處)의 <풍토기(風土記)>는 이렇게 전한다. “5월 5일에 용선을 경주하는 것은 세속에서 굴원이 멱라강(汨羅江)에 투신한 날로 세간에 전해지며, 백성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배를 띄워 구하려 한 데서 비롯됐다.”
굴원은 전국(戰國)시대 초(楚)나라의 시인이자 정치가로 중국 낭만주의 문학의 기틀을 세운 인물이다. 그는 ‘초사(楚辭)’의 창시자이자 대표적인 작가로서 ‘향초미인(香草美人)’의 전통을 열어 후대 시가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충심을 지녔으나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지방으로 유배됐다. 기원전 278년, 진(秦)나라가 초나라의 도성을 함락하자 굴원의 정치적 이상이 무너졌다. 결국 음력 5월 5일, 그는 큰 돌을 안고 멱라강에 몸을 던져 죽음으로 자기 뜻을 세상에 드러냈다. 그의 죽음을 전해 들은 백성들은 큰 슬픔에 빠졌고 크고 작은 배에 나눠 타고 강가로 몰려왔다. 사람들은 물고기가 굴원의 시신을 훼손할까 염려해 강 한복판으로 배를 몰아 그의 시신이나마 찾으려 했다. 힘차게 노를 저으며 앞다퉈 나아가는 배들과 징·북소리가 어우러진 광경은 실로 장관이었다. 이후 해마다 음력 5월 5일 단오절이면 사람들은 용선 경주를 열어 굴원을 기리고 그의 애국심을 이어받았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르는 사이 ‘용선경도’라는 성어가 역사 속에 깊이 새겨졌다.
사실 민족과 지역에 따라 용선에 얽힌 이야기는 각기 다르며, 사람들은 용선 경주에 저마다의 의미를 담아낸다. 장쑤(江蘇)성과 저장(浙江)성 일대에서 용선 경주는 현지의 근대 혁명가 추근(秋瑾)을 기념하는 의미도 지닌다. 구이저우(貴州)성의 먀오(苗)족 사람들은 ‘용선절’을 통해 모내기 성공과 오곡풍성을 기원했다. 윈난(雲南)성의 다이(傣)족 동포들은 용선 경주를 통해 고대 영웅 암홍와(岩紅窩)를 기렸다.
민속 속의 단오
용선 경주 외에 단오절에 쭝쯔(粽子)를 먹는 풍습도 널리 전해졌다. 쭝쯔는 ‘자오수(角黍)’, ‘퉁쭝(筒粽)’ 등으로도 불린다. 쭝쯔는 주로 하천이나 연못 주변에서 자라는 어린 갈댓잎을 사용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대나뭇잎을 쓰기도 하는데 이를 통칭하여 종엽이라고 한다. 대추로 만든 쭝쯔인 짜오쭝(棗粽)은 발음이 ‘짜오중(早中, 조기 합격)’과 같아 공부하는 사람이 이를 먹으면 장원 급제한다는 의미가 있다. 오래 전 과거시험을 치르는 날에 짜오쭝을 먹는 풍습이 있었고 오늘날에도 고등학교 입시나 대학입시 등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부모가 자녀의 합격을 기원하며 짜오쭝을 준비한다.
오색실을 묶고 향낭을 차는 것도 단오절의 대표적인 풍습이다. 오색실은 청, 적, 백, 흑, 황의 다섯 가지 색실로 구성된다. 사람들은 이 다섯 색을 상서로운 색으로 여겼고, 단오절에 이를 착용하면 평안을 얻는다고 믿었다. 세월이 흐르며 오색실을 매던 풍습은 점차 향낭을 차는 문화로 이어졌다. 특히 아이들에게 향주머니를 채워주곤 했는데, 여기에는 액운을 막고 전염병을 물리친다는 벽사의 의미가 담겨 있다. 향낭 안에 주사(硃砂), 웅황(雄黃), 향약(香藥) 등을 넣어 은은한 향이 퍼지도록 했으며, 오색 비단실로 정교하게 엮어 작고 귀여운 장식으로 완성했다. 남방 일부 지역에서는 젊은 남녀가 향낭을 서로 주고받으며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단오절 풍습 가운데 소금에 절인 오리알, 셴야단(鹹鴨蛋)을 먹는 것도 빠질 수 없다. 옛말에 “셴야단과 쭝쯔를 먹어야 한기가 물러간다”라는 말이 있다. 단오절이 지나면 본격적인 여름이 찾아오고, 자연이 생동하는 계절로 접어들면서 습한 날씨 속에 병충해와 세균도 기승을 부리며 각종 질병이 발생하기 쉽다. 단오절에 셴야단을 먹으면 독소를 제거하고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오리알은 둥글고 매끈한 형태를 지녀 화목과 원만함을 상징하기 때문에 단오 무렵에는 서로 오리알을 선물하며 가족과 친구에 대한 안부와 축복의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단오절은 단순한 민속 축제를 넘어 살아있는 문화 전승의 장이기도 하다. 은은한 종엽 향이 감도는 정겨운 일상과 물살을 가르는 용선 경주의 뜨겁고 호방한 기상이 한데 어우러지고, 해충과 질병을 쫓던 옛사람의 지혜와 선현을 기리는 깊은 우국충정(憂國衷情)이 그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해마다 돌아오는 단오절, 서로의 무탈함을 바라는 소박한 마음속에서 우리는 대를 이어온 풍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각별한지를 새삼 깨닫는다.
글|장샤오솨이(張曉帥) 중국사회과학원대학 문예학 석사
사진 | 인공지능(AI) 생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