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1

20여 년 전, 저장(浙江)성의 한 공장 마당에서 컨테이너에 물건을 싣던 기억이 있다. 그때 중국이 파는 물건은 단순했다.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손으로 만든 값싼 것들이었다. 몇 해 뒤 나는 나인봇(Ninebot)의 세계 1호 총판이 돼 전동 이동 수단을 한국에 들여왔다. 그것 역시 형태가 있는 제품이었다. 하지만 본질은 그 안을 채운 자이로 센서와 제어 알고리즘이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중국이 파는 품목에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제품을 넘어 소프트웨어와 기술 같은 무형의 자산까지 포함돼 있다.
중국 해관총서(海關總署) 발표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중국 수출입액은 25조 4700억 위안(약 5316조 원)으로 나타났다. 상반기 기준 25조 위안을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9% 늘었다. 하지만 정작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수치보다 품목이다. 바로 로봇과 인공지능(AI), 그리고 혁신 신약이다. 중국은 이 세 가지를 통틀어 ‘신신삼양(新新三樣)’이라 부른다.
손에서 머리로
개혁개방 초기의 수출 효자는 옷과 가구, 가전이었다. ‘구삼양(老三樣)’이라 한다. 값싼 노동력이 밑천이었다. 다음 차례는 전기차·리튬전지·태양광의 ‘신삼양(新三樣)’이다. 2025년 수출액이 약 1조 3000억 위안에 달했다. 이때 밑천은 촘촘하게 완성된 공급망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신신삼양의 시대다. 밑천이 또 한 번 바뀌었다. 원천 기술과 그것을 키워낸 생태계다.
중요한 건 무엇을 파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파느냐다. 수치부터 보자. 올 상반기 산업용 로봇 수출은 62억 9000만 위안으로 18.6% 늘었고, 그 대상은 141개 나라와 지역으로 확장됐다. 특히 수술 로봇 수출액은 약 4억 8000만 위안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산업용 로봇 수출액이 수입액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로봇을 사들이기만 하던 중국이, 이제는 로봇을 더 많이 파는 나라로 돌아선 것이다.
그런데 배에 실려 수출되는 것이 단지 로봇만은 아니다. 물체를 알아보는 시각 인식, 작업 순서를 짜는 스케줄링, 공장 라인을 통째로 다시 설계하는 시스템 통합 기술이 함께 건너간다. 기계를 파는 게 아니라, ‘공장 돌리는 노하우’를 파는 셈이다.
AI는 한발 더 나아간다. 세계 AI 모델을 한데 모아놓은 오픈라우터(OpenRouter)를 보면, 7월 셋째 주 중국 대형언어모델(LLM)의 호출량이 36조 1100억 토큰을 기록했다. 12주 연속 세계 1위다. 광섬유와 광모듈, 서버처럼 AI에 탑재된 제품들이 올해 기계·전자제품 수출 증가분의 절반 이상을 만들었다. 정작 눈여겨볼 대목은 그 바깥이다. 페루의 항만에서는 중국 알고리즘이 배에 짐을 어떻게 실을지 실시간으로 계산한다. 동남아에서는 중국 AI가 중소기업의 디지털 전환을 돕고 있다. 중국 해외로 진출한 것은 기계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이다.
혁신 신약은 아예 제품이 아니라 개발·판매의 권리를 판다. 올 상반기 기술 수출(라이선스 아웃) 계약 규모가 1100억 달러쯤 됐다. 벌써 지난해 1년 치의 80%에 이르는 수준이다. 같은 기간 승인된 38개의 1류(1類) 혁신 신약 가운데 11개는 새로운 표적·새로운 작용 기전의 의약품으로, 모두 중국서 자체 연구 개발한 혁신 신약이다.
왜 하필 지금, 그것도 셋이 한꺼번에
제품을 넘어 독자적인 기술까지 수출하는 이 변화는 우연이 아니다. 뿌리가 하나이기 때문이다.
선전(深圳)이나 창장삼각주(長江三角洲)에 가보면 안다. 부품을 구하러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시제품 하나 고치는 데 며칠이면 족하다. 물류창고와 병원, 식당 주방에서 매일 쌓이는 데이터는 그 자체로 거대한 실험실 역할을 한다. 거기에 더해, 내수 시장의 치열하다 못해 지독한 경쟁이 원가 절감과 개발 속도를 극한으로 끝까지 밀어붙였다. 그리고 2006년 국가 중장기 과학기술 발전 계획 이후 20년간 길러낸 인재와 기초연구가 이제야 결실을 보고 있다. 결코 하루아침에 솟아난 것이 아니다.
신신삼양은 구삼양과 신삼양을 버리고 나온 것도 아니다. 그 축적된 역량의 발판 위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한 것이다.
한국은 어디에 서 있나
통계 하나가 필자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한국은 제조업 로봇 밀도가 세계 1위다. 노동자 1만 명당 1012대로, 세계 평균의 6배를 쓴다. 그런데 로봇 핵심 부품의 국산화율은 40% 안팎에 불과하다. 절반 가까이 사다 쓰는 실정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한국은 로봇을 가장 잘 쓰는 나라이지, 가장 잘 파는 나라는 아니다.
역설적으로 여기에 오히려 길이 있다고 본다. 해법을 파는 시대라면, 그 해법은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쪽이 만들기 마련이다. 반도체 공정과 이차전지 공정, 조선소, 그리고 내가 오래 들여다본 외식 프랜차이즈 주방에 이르기까지 한국이 쌓아온 운영 노하우는 그 자체로 값비싼 자산이다. 문제는 그것을 상품으로 만들어 본 경험이 적다는 데 있다. 좋은 설비를 사서 잘 쓰는 일과, 잘 써본 경험을 남의 공장에 팔 수 있게 다듬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다.
세 가지만 제안하고 싶다. 먼저 파는 단위를 바꾸자. 장비 한 대만 팔 게 아니라, 장비에 운용 소프트웨어와 원격 유지보수를 묶은 패키지로 팔아야 한다. 다음으로, 중국의 공급망을 밀어낼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함께 활용할 파트너로 바라봐야 한다. 부품 공급과 속도는 중국 생태계에서 얻고, 정밀 공정과 시스템 통합, 신뢰성은 한국이 맡는 조합이 현실적이다. 마지막으로 권리를 사고파는 힘을 길러야 한다. 신약 기술 수출이 보여주듯, 앞으로 무역은 계약서와 협상 테이블에서 승패가 갈린다.
중국은 시장과 자본, 부품 생태계가 있다. 한국은 정밀 공정과 시스템 설계, 그리고 빠르게 제품으로 구현해 내는 실행력이 있다. 서로 경쟁하는 영역이 넓어진 건 사실이다. 그래서 더 촘촘하게 협력할 자리를 찾아야 한다.
신신삼양은 중국이 어디까지 도달했는지 알려주는 이정표다. 동시에 한국을 향해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무시해도 답이 안 나오고, 부풀려 위기의식만 가져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직접 눈으로 보고 꼼꼼하게 재어본 뒤, 우리 자리를 정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지난 25년 동안 중국에서 그 자리를 몇 번이나 고쳐 그렸다. 앞으로도 몇 번은 더 고쳐 그려야 할 것 같다.
글 | 박진만 사단법인 한중연합회 중국경영연구소 부소장·한중프랜차이즈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