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8
중국은 예로부터 교육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중국 고대사회에서는 교육을 통해 몸과 마음을 수양하고 덕을 쌓으며 올바른 품성을 기르고 인의예법(仁義禮法)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학식을 넓히고 재능을 기르는 실용적 쓰임뿐만 아니라, 언행을 규범화하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도덕적 기준 역시 교육에서 비롯된다고 봤다. 작게는 개인의 인격 완성과 입신양명부터 크게는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나라를 다스리는 데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영역이 사람을 가르치고 올바르게 인도하는 교화와 맞닿아 있다. 고대 중국의 위대한 스승, 공자(孔子)는 ‘각자 자질에 맞게 가르침을 베푼다’라는 인재시교(因材施教)를 주창했다. 이는 교육과 교화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일깨우고 각자의 장점을 살리며 단점을 보완해 스스로 더 나은 존재가 되도록 이끄는 것이다. 중국인은 이러한 교육을 통해 성현의 가르침을 대를 이어 전승하고 문명의 정신과 기개를 이어온 것이다.

성어의 출처와 유래
‘인재시교’라는 교육 사상은 <논어(論語)>에 담긴 공자의 실제 교육 현장에서 싹텄다. 다만 ‘인재시교’라는 성어가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정착한 것은 북송(北宋)의 정이(程頤)가 “공자는 사람을 가르칠 때 저마다 자질에 맞게 교육했다(孔子教人 各因其材)”라고 언급한 데서 비롯됐다. 이후 남송의 주희(朱熹)가 <사서장구집주(四書章句集註)>에서 이를 인용해 의미를 풀이하면서 후세에 널리 전해졌다. 공자는 제자의 성격과 자질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가르쳤고, 후세는 이런 교육 방식을 ‘인재시교’라고 일컬었다.
평생에 걸쳐 수많은 제자를 거두고 가르친 공자의 가장 위대한 교육적 혜안은 단연 ‘인재시교’였다. 그는 모든 학생에게 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다. 저마다 성품과 단점, 장점을 자세히 관찰한 뒤 맞춤형 방식으로 이끌어, 누구나 자기만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도록 도왔다. 공자의 제자 중 성격이 극과 극이었던 두 인물, 바로 자로(子路)와 염유(冉有)였다. 자로는 호방하고 용맹하며 매사에 거침이 없었으나, 성정이 급하고 충동적이어서 일단 행동으로 옮겼다. 충분히 숙고하지 않고 일을 추진하다 보니 경솔한 실수를 저지르곤 했다. 반면 염유는 온화하고 겸손하며 신중했으나, 지나치게 소심하고 우유부단해 늘 행동에 나서기 직전 주저하며 기회를 망설이는 편이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차례로 공자를 찾아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의롭고 올바른 도리에 맞는 일을 들으면 곧바로 실행에 옮겨야 합니까?” 공자는 자로의 충동적이고 경솔한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앞뒤를 따지지 않고 무모하게 행동할지 우려한 공자는 자로를 절제시키기 위해 이렇게 타일렀다. “네게는 아버지와 형이 계신데, 어찌 옳은 도리를 들었다고 해서 즉시 행하려 하느냐”라고 말했다. 이어서 염유도 같은 질문을 하러 왔다. 공자는 염유가 지나치게 소심하고 우유부단해 매사에 주저하며 쉽게 행동하지 못하는 성격이라는 점을 헤아리고 있었다. 그래서 공자는 그를 독려하며 정반대의 처방을 내렸다. “의로운 도리를 들었다면 마땅히 용기를 내어 즉시 실천해야 하느니라.”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제자 공서화(公西華)는 스승이 같은 질문에 정반대의 답을 한 것을 보고 의아하게 여겨 그 이유를 물었다. 공자는 “염유는 성격이 유약하여 늘 한 걸음 물러서려 하기에 과감하고 용감하게 행동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반면 자로는 지나치게 용맹하고 성급하며 충동적으로 앞서 나가는 성격이어서 절제와 신중함을 가르쳐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아무리 훌륭한 진리라도 전하는 대상에 따라 전달 방식이 달라져야만, 배우는 이가 단점을 딛고 장점을 꽃피울 수 있는 법이다. 훗날 사람들은 가르치는 이가 배우는 이의 개성과 자질, 성품을 두루 살펴 가장 적절한 교육 방법을 택함으로써 각자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방식을 가리켜 ‘인재시교’라 불렀다.
사회 안정의 토대가 된 교육
고대 사회에서 교육을 중시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역대 통치자들은 교육을 치국(治國)의 근간이자 사회를 안정시키고 백성의 기풍을 바로잡는 중요한 수단으로 삼았다. 유교 교육의 선구자인 공자도 “법과 형벌로 백성을 다스리면 형벌을 피하기만 할 뿐 부끄러움을 알지 못한다. 덕으로 이끌고 예로 다스리면 부끄러움을 알고 스스로 바로잡는다(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라고 말했다. 도덕적 교화가 형벌에 의한 통제보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본분을 지키도록 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는 통찰이었다. 백성이 예를 알고 선을 지향하면 자연스럽게 갈등이 줄어들고 사회도 안정되기 마련이다. 조정은 이를 바탕으로 덕망과 능력을 갖춘 인재를 선발해 지방을 다스림으로써, 천하를 효율적으로 통치하는 동시에 국가의 기반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역대 왕조가 일관되게 문교(文敎, 문화와 교육) 진흥 정책을 적극 추진해 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漢)나라 조정은 태학(太學)을 설치해 유가 사상에 대해 전문적으로 가르쳤다. 학문을 장려해 도리를 깨닫게 하고 품행이 단정한 선비를 선발해 관리로 등용했다. 이를 통해 백성이 규범을 지키고 예를 실천하도록 이끌었다. 수(隋)·당(唐) 시기에 이르러서는 과거제도가 생겨나, 평범한 백성도 학문에 힘쓰면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나아갈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됐다. 전국 각지에 관가에서 운영하는 학당(관학)이 설립됐고 백성들 사이에서도 점차 자녀에게 글을 가르치려는 이들이 늘어나 배움을 중시하는 풍조가 빠르게 확산했다. 송(宋)나라는 특히 문화와 교육을 중시했다. 관가에서는 각 주(州)와 현(縣)에 학교를 세웠고 민간에서도 수많은 서원을 설립했다. 관리와 일반 백성 모두 학문을 숭상했으며 스승들은 학생 개개인의 특성에 맞춰 가르치는 교육 방식을 중시하고 젊은 인재 양성에 힘썼다. 명(明)·청(淸) 시기에는 도성 안 뿐 아니라 시골 마을에도 무료 기초 교육기관이 다수 설립됐다. 여러 가문에서는 사재를 들여 일족의 자녀들이 학문을 익힐 수 있도록 지원했으며,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와 전통적 덕목을 가훈에 담아 어릴 때부터 후손을 교육했다.
옛사람들이 교화를 통해 사회를 안정시켰듯, 오늘날 역시 교육의 역할은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예나 지금이나 교육은 사람을 세우는 근본이자 국가를 지탱하는 기반이었다. 또한 ‘인재시교’의 교육 이념은 세대를 이어 교육자에게 영감을 주며, 저마다 개성과 재능을 지닌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장점을 마음껏 발휘하고 배움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글|장샤오솨이(張曉帥) 중국사회과학원대학 문예학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