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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로 인해 탄생한 도시


2026-09-29      

징더전의 이야기는 창장(昌江) 상류에 있는 옛 마을, 야오리(瑤里) 고진(古鎭)에서 시작된다. 도자기 원료인 자석(瓷石)과 고령토, 땔나무, 맑은 계곡물이 이곳에 모여 천혜의 도자기 제작 환경을 이뤘다. 한(漢)대의 소박한 질그릇에서 송(宋)대의 청백자에 이르기까지, 장인들은 대대로 기술을 갈고닦아 마침내 옥처럼 부드럽고 영롱한 ‘영청(影靑)’을 구워냈다. 서기 1004년, 북송의 진종(眞宗)이 이곳에 ‘징더(경덕)’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가마 속 피어오른 불꽃은 그렇게 전 세계를 밝히기 시작했다. 이후 수백 년 동안 징더전 도자기는 해상 실크로드를 따라 바다를 건너 세계 각지로 전해졌고 ‘차이나(china)’라는 단어는 점차 도자기를 가리키는 말이 됐다. 어요창 유적에 산더미처럼 쌓인 깨진 도자기 조각들은 완벽해지길 바랐던 옛 장인들의 굳은 집념을 묵묵히 전하고 있다.


야오리 전통 물레방아(水碓坊)는 수력을 이용해 도자기 제작에 필요한 원료를 생산했다.


산과 물이 빚어낸 도자기의 발원지

징더전 도자기 제작의 기원을 따라가고 싶다면, 도시 동북쪽에 있는 야오리 고진을 찾아가 보자.


창장 상류의 산골짜기에 있는 야오리는 시내에서 약 50㎞ 떨어져 있다. 이 옛 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계곡물이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지른다. 물길을 따라 돌길이 이어지고, 양옆에는 흰 벽에 검은 기와를 얹은 오래된 가옥이 늘어서 있다. 이른 아침 안개가 피어오르면 산과 숲, 기와지붕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감추기를 반복하며, 천천히 펼쳐지는 한 폭의 산수화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고요해 보이는 이 골짜기에는 사실 도자 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중요한 조건이 숨어 있다. 산에 풍부하게 매장된 자석과 고령토는 도자기를 만드는 주요 원료가 됐고, 울창한 숲은 가마를 떼는 데 필요한 땔나무를 넉넉히 대주었다. 또 계곡물은 창장으로 흘러들어 수력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운송에도 유리한 환경을 마련해줬다. 자토(瓷土)와 연료, 수원과 수운이 한 곳에 모여 있었기에, 이 지역에서는 일찍부터 도자기가 제작됐다.


문헌에 따르면 한나라 때 이미 이 지역 주민들은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당(唐)대에 이르러 이 일대는 창난(昌南)진이라 불렸고, 가마 산업은 점차 규모를 키워갔다. 오대(五代)부터 북송 시기까지 장인들은 전통적인 청자 제작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자기를 구워냈다. 바로 ‘청백자’다. 곱고 치밀한 태토(胎土)에 맑고 윤기 어린 유약을 입힌 청백자는 유약 층이 얇은 곳에서는 눈처럼 희고 두꺼운 곳에서는 은은한 푸른빛을 띠었다. 빛을 받으면 옥처럼 부드럽고 따스한 빛을 머금어, 후대에는 이를 ‘영청’이라고도 불렀다. 이 도자기는 곧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이를 계기로 창장 유역에 징더전을 중심으로 한 도자기 생산지가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했다.


야오리 고진의 풍경


황제가 하사한 지명 ‘징더’

1004년 북송 진종 조항(趙恒)은 창난진에서 생산된 도자기를 매우 아껴 자신의 연호인 ‘징더’를 이 마을에 하사했다. 황제의 연호를 도시나 마을의 이름으로 삼는 경우는 중국 역사에서도 흔치 않다.


이때부터 징더전의 도자 산업은 더욱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각지에서 장인들이 모여들었고, 도자기의 종류도 날로 다양해졌다. 때마침 중국의 대외 무역도 점차 활기를 띠면서 수많은 도자기가 해상 무역로를 통해 해외로 뻗어나갔다. 동남아시아와 중동, 멀리 동아프리카에 이르는 일부 유적지에서 발굴된 송·원(元)대 중국 도자기 상당수 역시 징더전에서 생산된 것으로 확인됐다. 징더전 도자기가 유럽으로 대량 수출되면서 ‘차이나’라는 말은 자연스럽게 도자기를 가리키는 대명사가 됐다.


원대에 이르러 징더전은 청백자를 바탕으로 완성도 높은 청화백자를 만들어냈다. 이는 해외 시장을 더욱 넓히는 계기가 됐고, 훗날 명(明)대에 확립되는 어요 제도의 기틀을 마련했다.


명대 홍무(洪武) 2년(1369년), 조정은 징더전에 어기창(御器廠)을 설치했다. 궁궐에서 사용할 도자기를 전문적으로 생산·납품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수백 년 동안 징더전은 줄곧 황실 어요의 중심지로 자리했다. 최고급 자토와 안료, 장인이 창장 양안으로 끊임없이 모여들었다. 그곳에는 점차 분업이 정교하게 이뤄진 대규모 도자기 생산 체계가 형성됐다.


어요는 품질 관리도 매우 엄격했다. 도자기의 형태와 문양, 유약의 색은 물론 크기까지 명확한 기준이 정해져 있었다. 조금이라도 흠이 발견되면 민간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고자 그 자리에서 깨뜨려 묻어버렸다. 오늘날 징더전 어요창 유적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도자기 파편이 층층이 쌓인 퇴적층이 발견됐다. 당시에는 깨뜨려 폐기한 ‘불량품’이었던 조각들이 지금은 명·청(淸) 시대 도자기 제작 기술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가 됐다. 고고학자들은 파편을 맞추고 대조하는 작업을 통해 당시 도자기의 형태와 문양을 복원해 냈다. 묻혀 있던 징더전 도자기의 역사가 마침내 선명한 빛을 얻어 오늘날 우리 앞에 되살아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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