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01

2022년 중국 베이징(北京)에 와서 처음 싼리툰(三里屯) 쇼핑몰 타이쿠리(太古里)를 찾았던 날이 떠오른다. 거리 곳곳에서 초록색 ‘&’ 로고가 박힌 쇼핑백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중국인 지인은 “버터풀앤크리멀러스(B&C)라는 한국 베이커리 브랜드의 쇼핑백인데, 저걸 소장하려고 일부러 빵을 사 먹는 사람도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싼리툰 B&C 매장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고, 빵을 산 사람마다 쇼핑백을 들고 인증사진을 남기고 있었다. 이후 타이쿠리를 지날 때마다 그 줄을 보면 괜히 뿌듯해졌고, 한국에서 손님이 오면 꼭 한 번씩 데려가는 코스가 됐다.
올해 들어 싼리툰에서 필자의 눈길을 끄는 것이 또 하나 있다. 한국 패션 브랜드다. 타이쿠리 입구에 크게 자리 잡은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를 시작으로 우영미, 에미스, 레스트앤레크레이션, 그리고 2월 초 새로 오픈한 아더에러 베이징 스페이스까지 매장이 잇달아 들어섰다. 화장품 브랜드 탬버린즈도 한창 오픈을 준비 중이다. 싼리툰 한복판에 서울 성수동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다.
이 같은 흐름은 베이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해 싼리툰을 비롯해 상하이(上海) 화이하이루(淮海路), 선전(深圳) 완샹톈디(萬象天地) 등 주요 상권에 진출한 한국 패션 브랜드만 최소 10곳이다.
RAIVE, Fakeme, Contact X, GRVRGROVE, Mmlg 등 필자에게도 낯선 영어 이름의 한국 스트리트 브랜드들이 중국 젊은 층 사이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었다.
중국인들은 트렌디하면서도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 그리고 과하지 않은 젊은 감각을 한국 패션 브랜드들의 공통점으로 꼽는다. 한 지인은 한국 패션이 “K팝 아이돌의 공항 패션처럼 수수하지만 세련되고, 자연스럽지만 개성이 있다”고 말한다. 단순히 옷을 판매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매장 공간을 통해 브랜드의 정체성과 문화를 경험하게 만드는 전략도 눈에 띈다.
이는 K팝, K드라마 등 K컬처의 확산 속에서 중국 신세대 소비자의 감성적 가치를 읽어낸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진출 공식도 비교적 분명하다. ‘중국판 인스타그램’으로 불리는 샤오훙수(小紅書)에서 입소문을 만들고, 베이징과 상하이 등 대도시 핵심 상권에서 팝업스토어를 열고 인플루언서를 초청해 화제성을 키운 뒤 정식 매장으로 확장하는 방식이다.
세계 최대 소비시장인 중국에서 K패션의 인기가 반짝 유행에 그칠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을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몇 년 후에도 싼리툰을 찾았을 때, 초록색 ‘&’ 쇼핑백처럼 또 다른 한국 브랜드의 로고가 거리를 채우고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