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16

장시성 상라오시 우위안현 황링고촌의 대표적인 풍경인 쇄추 사진/CNSPHOTO
장시성 상라오시 우위안현 황링(篁岭)의 푸른 산자락 아래, 수백 년 동안 이어진 ‘쇄추(晒秋)’ 풍습과 천년 세월을 간직한 나무(傩舞)가 어우러져 독특한 문화적 풍경을 이룬다. 아침 햇살 아래 창가 가득 펼쳐진 오색 빛 수확물은 휘파(徽派)의 흰 벽과 대비를 이루며 빛나고, 해 질 녘 울려 퍼지는 나무의 북소리는 시공을 초월해 자연을 향한 산간마을 주민들의 경건한 염원을 전한다.
쇄추, 산간을 수놓은 시
케이블카가 산골짜기를 유유히 가로지르자 황링 고촌이 서서히 시야에 들어온다. 산비탈을 따라 층층이 지어진 민가 사이로 목제 창살과 발코니마다 가득 펼쳐진 무수한 ‘색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동그란 대나무 채반에 새빨간 고추와 샛노란 옥수수, 주홍빛 늙은 호박과 새까만 콩 그리고 새하얀 고구마말랭이까지, 아침 햇살에 비친 모습이 마치 거대한 화폭에 물감을 마음 가는 대로 그러나 공들여 흩뿌려 놓은 것 같다. 이것이 바로 수백 년 동안 이어진 ‘쇄추’ 풍습이다. 본래 농가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가을걷이한 농작물을 햇볕에 말리던 소박한 삶의 지혜였으나, 오늘날에는 산촌의 삶을 그려내는 민속 예술로 자리 잡았다.
청석판이 깔린 좁은 골목에 들어서자, 공기 중에 마른 고추 특유의 은은한 매운 향이 배어든다. 골목이 몹시 좁아 길 양옆의 처마가 손 닿을 듯 가깝다. 예순쯤으로 보이는 위춘화(余春花) 씨는 자신의 집 3층 발코니에서 능숙한 손놀림으로 대나무 채반 위에 옥수수를 고르게 펼치고 있었다. 그 동작은 오랜 세월 몸에 밴 듯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서, 채반 하나하나가 고루 햇살을 받을 수 있도록 정성이 담겨 있다. “예전에는 겨울을 날 준비를 하는 게 급선무였다. 지금은 이 풍경을 보려고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이 몰려와 카메라를 들고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우리한테는 그냥 평범한 일상인데, 남들 눈엔 한 폭의 그림이 된다니 생각할수록 참 신기하다.” 순박한 웃음을 짓는 그의 뒤로 휘파 건축 특유의 눈처럼 하얀 벽이 알록달록한 곡식을 더 선명하게 부각했다. 층층이 이어진 마두장(馬頭牆)이 좁고 긴 골목에 변화무쌍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이런 풍경은 고요한 고향의 정취를 더하고, 산촌 주민의 삶의 지혜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춘절(春節, 중국의 음력설) 기간, 장시성 상라오시 우위안현 추커우(秋口)진 창징(長徑)촌의 무형문화유산 나무 공연자가 전통 채색 복장을 갖추고 고풍스러운 나무 가면을 쓴 채 마을을 돌며 공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VCG
나무, 가면 뒤의 염원과 전승
이 땅의 정신적 정수로 들어서는 가장 훌륭한 관문은 무형문화유산 기예인 ‘나무’다. 3000여 년 역사를 지닌 ‘춤의 살아있는 화석’인 나무는 옛 휘주인들이 귀신과 역병을 쫓고 평안과 풍년을 기원한 종교의식이었다. 과거 우위안 산간 지역은 상대적으로 외부와 단절돼 있었기 때문에 이 오래된 예술이 원형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어스름이 내려앉은 저녁, 황링 산자락에 있는 오래된 사당(祠堂)에서 나무 공연이 펼쳐졌다. 어둑한 사당 안에 단조로운 징과 북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지면 음악이라기보다 원시적인 율동에 더 가까운 소리에 관객은 일상과 동떨어진 신비한 색채가 가득한 공간으로 순식간에 스며든다. 강렬한 색채에 과장된 표정의 목제 가면을 쓴 무용수들이 단순하지만 힘찬 발걸음으로 춤을 추었고, 그들의 춤사위에 맞춰 타오르는 모닥불이 어둠 속에서 거대하고 생동감 넘치는 그림자를 드리운다. 나무 가면의 표정은 위엄이 넘치거나 험상궂었으며, 강인한 춤사위에는 현대극의 세련된 아름다움은 없지만 선조들의 강렬한 기원에서 비롯된 순수한 힘이 느껴졌다.

각양각색의 독특한 나무 가면 사진/VCG
무대 뒤, 한 노장 장인이 방금 사용한 가면을 정성스럽게 닦아 하나하나 공손하게 상자에 넣는다. 그는 ‘개로신(開路神)’ 가면 하나를 들고 “나무는 귀희(鬼戲, 귀신극) 또는 무귀(舞鬼, 귀신춤)라 불렸다. 가면을 쓰는 순간 당신은 더이상 당신이 아닌 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모든 나무 공연은 시작에 앞서 엄격한 상자 열기(開箱)와 신을 모시는(請神) 의식을 반드시 거쳐야 하며, 무용수는 목욕하고 재계한 뒤 경건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설명했다. 공연 중에는 사람이 가면 속 신과 하나가 되는 매개체가 되어 마을 사람들의 기원을 신에게 전한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신을 보내드리는(送神) 의식을 치르고, 정중하게 가면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다. 그는 “나는 십 대 때부터 사부님께 나무를 배웠다. 사부님은 마음이 정성스럽지 않으면 춤에 혼이 깃들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제는 진심으로 나무를 사랑하는 제자를 키워 신과 통하는 이 길이 우리 대에서 끊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사당 밖, 나무의 북소리는 잦아든 지 오래지만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초자연적인 존재와 대화하고자 했던 그 경건하고 신비로운 기운은 선선한 밤공기 속에 한동안 짙게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