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  >> 칼럼 >> 본문

상재지정, 먼 곳에서도 고향을 그리워하다


2026-04-16      



고향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가장 여리고 애틋한 결이 살아있는 곳이다. 사람들은 흔히 고향을 ‘상재’라고 부른다. 이는 중국 농경 사회의 모습과 깊은 관련이 있다. 뽕나무(桑)와 가래나무(梓)는 백성들의 삶과 가장 밀접한 나무로 옛사람들은 집 주변에 뽕나무를 심어 양잠과 베 짜기로 생계를 유지했다. 가래나무는 재질이 우수해 기구나 관, 중국 전통 악기인 금(琴)과 슬(瑟) 등 그 쓰임새가 다양했다. 옛사람들이 ‘상재’를 고향의 대명사로 여긴 것은 고향의 나무에도 공경할진대, 하물며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땅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따라서 ‘상재지정(桑梓之情)’은 타향을 떠도는 나그네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한 정을 표현하는 말로 쓰인다.


상재지정 출처와 유래

상재로 고향의 정을 표현한 것은 <시경(詩經)>의 <소아·소반(小雅·小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부왕에게 버림받은 태자가 유랑 길에서 지은 비가(悲歌)라는 설도 있다. 의지할 곳 없이 외로웠던 태자가 길가의 뽕나무와 가래나무를 보고 눈물을 쏟으며 “유상여래, 필공경지(維桑與梓, 必恭敬止)”라고 읊었다. 뽕나무와 가래나무를 볼 때마다 부모님이 떠올라 반드시 공경의 마음이 든다는 뜻이다.


동한(東漢) 시대에 이르러 문인들은 상재를 고향이라는 의미로 직접 표현하기 시작했다. 장형(張衡)은 <남도부(南都賦)>에서 “영세토록 효도를 다하며, 상재를 그리워하노라(永世克孝, 懷桑梓焉)”라고 했다. 장형은 자신의 고향을 예찬하면서 ‘상재를 그리워한다(懷桑梓)’는 말로 사향의 정을 드러냈다. 당(唐)나라의 시인 류종원(柳宗元)은 <문황리(聞黃鸝)>에서 “고향의 새는 무슨 일로 여기까지 날아와, 내 마음속에 상재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가(鄕禽何事亦來此, 令我生心憶桑梓)”라고 읊었다. 류종원은 먼 남방으로 유배돼 울적하던 차 고향에서나 들을 수 있는 꾀꼬리 울음소리를 듣고 솟구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참지 못한 것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구절은 단연 마오쩌둥(毛澤東)의 <칠절·개시증부친(七絕·改詩贈父親)>일 것이다. 그는 “뼈를 묻는 곳이 어찌 꼭 상재의 땅이랴, 인생은 어디든 다 청산이라오(埋骨何須桑梓地, 人生無處不青山)”라고 썼다. 열여덟 살의 청년 마오쩌둥은 학업을 위해 고향을 떠나며 아버지께 이 시를 통해 자기 뜻을 표현했다. 대장부의 뜻은 천하에 있으니 죽은 뒤 굳이 고향의 상재나무 아래에 묻힐 필요가 있느냐는 뜻이다. 이 구절에서 ‘상재’라는 표현을 역설적으로 활용해 고향에 대한 개인적 그리움을 드넓은 세상에 대한 호연지기로 승화시켰다.


상재지정은 <시경> 속 슬픈 눈물에서 문인이 말하는 고향을 거쳐, 다시 위인의 호방한 이상으로 이어져 왔다. ‘고향’의 동의어를 넘어 혈연으로 이어진 깊은 유대감이자 부모의 고향에 대한 경외와 그리움을 대표한다.


안토중천에서 배정리향까지

중국 전통 사회에서 안토중천(安土重遷)이라는 관념은 고향에 대한 중국인의 깊고 집요한 애착을 고스란히 나타낸다. ‘안토’란 본토에 안주하며 땅을 생명의 근원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중천’이란 이주를 중대한 일로 여겨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면 고향을 떠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런 관념은 유구한 농경 문명에 뿌리를 두고 있다. 땅은 생활의 터전일 뿐 아니라 조상의 묘지와 가문의 사당, 어린 시절의 기억이 깃든 터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재는 부모에 대한 은혜와 종족에 대한 혈연의 뿌리, 삶의 터전인 땅을 아우르는 무게감이 있다. 이는 단순히 지리적인 고향에 그치지 않고 정신적 귀착지이자 생명의 근원에 대한 중국인의 경외와 그리움을 담고 있다.


고향은 문학적 영감의 마르지 않는 원천이다. 시대를 풍미한 수많은 걸작이 작가가 딛고 선 그 땅에 뿌리를 두고 있다. 루쉰(魯迅)의 사오싱(紹興), 선충원(沈從文)의 샹시(湘西), 모옌(莫言)의 가오미 둥베이향(高密東北鄉) 등은 문학적 서사를 통해 불멸의 생명력을 얻었다. 고향은 문학에 가장 생생한 인물 원형과 생동감 넘치는 풍토적 색채, 두터운 정서적 기반을 제공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고향이 작가의 가장 본연적인 생애 체험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과 고향 사투리의 운율, 어머니의 부름, 집마다 피어오르던 밥 짓는 연기 등 이러한 태초의 감각들은 작가가 평생에 걸쳐 길어 올리는 창작의 샘물이 된다. 루쉰의 작품 속 룬투(閏土)와 백초원(百草園)이나 선충원이 그려낸 추이추이(翠翠)와 변성(邊城) 등 작품 곳곳에 차마 끊어낼 수 없는 절절한 상재지정이 흐르고 있다.


거센 도시화의 물결이 몰아치는 오늘날, 많은 이가 정든 고향을떠나는 ‘배정리향(背井離鄉)’의 길을 걷고 있다. 이것은 시대의 필연이자 개인이 마주한 현실적인 선택이다. 그들은 더 많은 일자리와 더 나은 소득, 보다 안정된 생활을 찾아 도시로 떠난다. 비록 타향에서 고군분투하고 삶의 무게와 일상의 분주함에 매몰돼 하루하루를 채워가고 있지만, 고향은 단 한 순간도 마음 곁을 떠난 적이 없다. 아무리 멀리 떠나왔을지라도 ‘안토중천’의 문화적 유전자는 여전히 우리의 뜨거운 선혈 속에 흐르고 있으며, 상재지정은 나그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글|장샤오솨이(張曉帥) 중국사회과학원대학 문예학석사

사진 | 인공지능(AI) 생성

240

< >
微信图片_20260302134546_2857_16.png

AI가 바꾼 청명절 풍경

올해 4월 5일은 중국 청명절(淸明節)이다. 이때가 되면 중국인들은 성묘하고 제사를 지내며 조상의 넋을 기린다.

읽기 원문>>

한국의 성묘 풍습 이야기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대부분 청명절(淸明節)에 성묘하며 선조를 추모한다. 중국과 한국은 모두 가문의 전승을 중시하는 문화가 비슷해, 신종추원(愼終追遠, 부모의 장례를 극진히 치르고 먼 조상까지 추모함)의 공경을 갖춘다.

읽기 원문>>